경영전략

• 지식기반경제에서 단순 제조업만으론 못 살아남아(스마트경영)

공격이 2008. 3. 30. 22:15

송재용 교수의 스마트경영][1]

 

지식기반경제에서 단순 제조업만으론 못 살아남아

 

사례 1: 한국을 먹여 살리는 대표 산업인 휴대폰·반도체·조선산업에서 한국기업의 실적이 좋아질수록 휘파람을 불며 반기는 외국 기업들이 있다. 누구일까? 각 산업에서 원천기술 특허를 확보하고 표준을 장악한 휴대폰의 퀄컴(Qualcomm), 플래시메모리의 샌디스크(Sandisk), LNG선의 프랑스 GTT사 등이다. 한국기업들은 이들에게 매출액의 2~8%를 로열티로 갖다 바쳐야 한다. 적자를 보거나 심지어 부도가 나도 예외란 없다.

 

사례 2: 미국의 대표 제조업체였던 IBM은 1992년 약 15조원(160억달러)의 천문학적 적자를 기록했다. 1980년대부터 컴퓨터산업의 패러다임이 메인프레임에서 PC로 급변하자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IBM은 그러나 위기를 딛고 글로벌 초우량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제조업체에서 서비스기업으로 변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IBM은 90년대 이후 부가가치가 낮은 범용(凡用) 제품의 제조는 대거 아웃소싱으로 외부화하는 한편, 부가가치가 높은 IT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스템 설계, 운용, 컨설팅 등을 고객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토털 솔루션 업체로 거듭났다.

 

사례 3: 2005년도 미국에서 최고 연봉은 얼마였을까? 답은 약 15억달러(1조4000여억원)로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라는 미국 헤지펀드의 CEO인 제임스 사이먼스가 그 주인공이다. 2005년도 한국의 상장기업 중 세후 순이익이 15억달러를 넘은 기업은 10개 정도에 불과했다. 사이먼스는 수학 교수 출신으로 첨단 수학기법이 동원된 금융파생상품을 개발·운용하여 천문학적인 이익을 창출했다. 반면 한국의 금융회사들은 고도화된 파생상품을 제대로 설계하지 못해서 월가로부터 비싼 돈을 주고 사 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게임의 룰’ 변화시키는 지식기반경제

 

선진국의 글로벌기업들이 돈을 어디서 어떻게 버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들이다. 경영학의 대부인 피터 드러커가 규정한 대로 21세기는 지식기반경제의 시대다. 지식기반경제에서는 돈을 버는 방식이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는 신작 ‘부의 미래’에서 “21세기의 부는 고객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차별적인 지식을 먼저 확보한 개인이나 기업, 국가가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식경제시대의 대표 산업으로는 생명공학(BT), 나노기술(NT), 정보기술(IT) 등 지식기반 하이테크산업과 컨설팅업 등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이 꼽힌다. 이들 지식기반산업에서 성패(成敗)는 시장의 표준이 될 수 있는 가치있는 지식재화를 누가 먼저 창출하느냐에 따라 갈린다. 물론 가치있는 지식재화를 선점하려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고, 실패확률도 높다. 하지만 선점해놓은 지식이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잡고, 원천기술특허 등 지적재산권으로 확실히 보호받을 경우 어마어마한 보상이 따른다. 표준을 장악한 초기경쟁의 승자가 장기간 고(高)이윤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초기경쟁의 패자나 후발진입기업은 생존조차 어려워지는 승자독식(winner takes all)과 수확체증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지식경제시대의 또다른 특징은 경쟁이 초기 단계부터 국경을 넘어 글로벌한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PC운영시스템을 석권한 MS(마이크로소프트) 사례처럼 글로벌 시장을 승자가 독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바꿔말하면 제조업시대에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던 방식처럼, 후발주자가 저임금-저비용을 앞세운 ‘빨리 따라하기(fast-follower)’ 전략으로 선발주자를 따라잡기는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얘기가 된다.

 

 

 

■전통산업도 지식기반 고도화 필수

 

지식경제시대는 지식기반산업뿐 아니라 전통산업의 경쟁 패러다임도 급속히 변화시키고 있다. 전통산업도 지식기반을 고도화하지 않을 경우 날로 치열해져 가는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범용제품의 원가경쟁력 우위에 안주하던 한국의 화학섬유산업이 지식기반 고도화에 실패하고 결국 중국에 추격당한 것이 좋은 예다. 반면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했던 한국 조선업계의 성공적 변신은 한국의 전통제조업이 가야할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지식기반 고도화에 대한 부단한 투자와 노력을 통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주문 설계 능력을 갖췄다. 또 세계 조선의 역사를 바꾼 육상건조기술 등 획기적인 신공정기술을 개발해 전통적인 강자인 일본을 제치고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LNG선 등 고부가가치 제품군에서도 1위를 달리는 게 고무적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 조선업계가 LNG선을 팔 때마다 원천기술을 보유한 GTT사에 로열티를 지급하는 것이 아쉽다. 이는 한국 업계가 지식기반 고도화 노력을 한층 강화해 한국이 원천기술을 확보한 새로운 개념의 배를 만듦으로써 해결해나갈 과제다.

 

■돈되는 분야는 가치사슬의 양쪽 끝에 몰려

 

과거 산업화시대에는 자본·노동·토지 등 재무제표에 나오는 유형재화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반면 지식경제시대에는 경쟁자가 모방하기 어려운 차별적인 기술력, 프리미엄 브랜드, 강한 경영시스템과 조직문화, 맞춤형 고객 서비스 제공 능력 등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는 무형자산이 중시된다. 특히 지식자산이 글로벌 경쟁우위의 원천으로서 최우선시됨에 따라 차별적인 지식을 창출해내는 혁신능력과 혁신의 주체인 핵심인재 확보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게 됐다.

 

R&D·디자인?제조?마케팅?서비스 등으로 이어지는 가치사슬(value chain)에서도 시대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산업화시대에는 가치사슬의 가운데인 제조단계가 이익 창출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었다. 즉 자본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추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거나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생산원가를 줄이는 형태의 단순 제조 활동이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창출한 것이다. 가치사슬의 각 단계별 이익(부가가치) 창출능력을 그림으로 그리면 중간단계인 제조부문이 가장 높은 ‘역(逆) U자’ 형태가 나타났다.

 

반면 지식경제시대에는 가치사슬의 앞쪽인 R&D·디자인·핵심부품·소재·소프트웨어·콘텐트 개발 등의 활동과 뒤쪽에 위치한 마케팅·토털솔루션 제공 형태의 서비스 활동이 상대적으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U자형 곡선이 나타난다.

 

이처럼 산업화시대에서 지식경제로 넘어가면서 가치사슬 곡선이 ‘역(逆) U자형’에서 ‘U자형’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사람의 웃는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스마일커브’라고 부르기도 한다. 앞서 제시한 IBM 사례는 스마일커브를 따라 움직여 성공한 대표적 경우다. IBM은 잘 하지도 못하는데다 부가가치도 점점 낮아지고 있었던 단순 제조 활동을 대거 아웃소싱한 반면, R&D·소프트웨어 개발·마케팅·컨설팅 등 토털솔루션 형태의 소프트 경쟁력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지식기반경제를 주도하는 기업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한국 기업, 특히 제조업체들이 스마일커브를 따라서 경쟁력의 축을 급속히 변화시키지 못한 채 단순조립·제조 위주의 사업모델만을 고수한다면 주력 산업조차도 글로벌 경쟁력을 오래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인도의 자동차업체가 오토바이 가격 수준인 3000달러대의 자동차를 출시하고, 중국 기업들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초저가의 공산품을 쏟아내면서 기술력도 급격히 향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R&D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프리미엄 브랜드 육성 등 마케팅 역량을 업그레이드하면서 고객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가치사슬 상에서 2차산업인 제조업을 서비스 중심의 소프트 경쟁력과 결합시켜 2.5차산업으로 변신시킬 수 있어야 21세기 지식기반경제에서 한국의 제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또 국가적 차원에서 투자금융·교육·의료·컨설팅·문화 콘텐트·소프트웨어 등 지식기반 서비스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풀고 이 분야를 집중 육성하면서, 정밀부품·소재산업 등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강화해야 21세기 글로벌 지식기반경제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조선일보 : 발행일 : 2007.07.28 / BZ3 C3 면 기고자 :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경영전략))

◆송재용 교수(43)는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에서 경영학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경영대에서 경영전략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경영학회와 유럽국제경영학회의 최우수박사논문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