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 시너지 경영은 ‘毒이 든 성배’인가

공격이 2008. 4. 8. 09:49

[송재용 교수의 스타트경영][3]

 

• 시너지 경영은 ‘毒이 든 성배’인가

한국의 대기업집단과 비슷하게 복합기업체(conglomerate)라고 불리는 미국 기업집단 중 상당수는 복합기업체 할인이란 악재에 시달려왔다. ‘복합기업체 할인(conglomerate discount)’이란 두 개 이상의 사업을 하는 기업이 한 사업에만 집중하는 전업(專業)형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투명성도 부족해 주가가 저평가되는 현상을 말한다. 마이클 포터(Porter)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사업이 추가될수록 경영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경영자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결과적으로 기업 전체의 수익성이 떨어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모든 복합기업체가 이런 현상에 시달린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복합기업체인 GE는 금융·에너지·발전설비 등 서로 다른 사업부 간의 시너지를 창출해 주식시장에서 높은 프리미엄을 인정받았다.

 

■지배구조 개혁에 묻힌 한국의 시너지 경영

 

외환위기 이전까지 한국의 기업집단(재벌)은 소유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 각 계열사들이 시너지 효과의 창출을 위해서 협력하는 선단식(船團式) 경영을 추구해 왔다. 하지만 외환위기는 계열사 간의 상호출자와 지급보증의 고리로 연결된 선단식 경영의 위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한 계열사의 부실이 다른 계열사의 동반 부실로 확산되면서 대우를 비롯한 여러 기업집단이 붕괴한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는 기업집단 내의 내부거래나 상호출자, 지급보증 등을 강력하게 규제하기 시작했고, 회장 및 그룹 본사의 전방위적 영향력도 축소시켰다.

 

이에 따라 LG·SK 등 많은 기업집단들은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형태로 재편해왔다. 정부도 지주회사를 진일보한 지배구조로 평가하고 있다.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자회사 간의 복잡한 상호출자관계가 해소될 뿐 아니라, 지배구조가 지주회사와 자회사 간의 단선적 지분관계로 단순화된다. 또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지주회사나 소유경영자가 보다 합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 가지 핵심적인 질문을 비껴갈 수 없다. 과연 기업집단의 시너지 추구는 잘못인가? 달리 표현하면, 지주회사 형태의 기업집단은 더 이상 자회사간의 유기적 협력을 통한 시너지를 추구해서는 안 되는가?

 

■시너지는 기업집단의 경쟁우위이자 존립근거

 

결론부터 말하면 여러 비즈니스로 구성된 복합형 기업(multi-business firm)이나 기업집단은 다양한 형태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러 사업부가 공동으로 새로운 사업기회를 창출하거나, 사업부별 고객들을 대상으로 교차 마케팅을 할 수 있다. 또 공동구매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거나 수직적 계열화를 통해 매출을 높이는 것 등이 시너지의 대표적 유형이다. 이 같은 시너지는 복합형 기업이 전업형 기업을 앞서는 경쟁 우위의 원천이자, 복합형 기업의 존립근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기업집단이 부(負)의 시너지를 창출한 사례가 많다. 기아·한보·진로 등 몰락한 한국 기업집단들은 실패한 신(新)사업을 매각·청산하지 않고, 전사적인 지원을 계속하다가 주력 계열사까지 부실에 빠뜨리는 패턴을 보였다. 반면 현대중공업처럼 계열 분리 이후 부실 계열사 지원의 족쇄를 벗고 핵심 사업에 자원과 역량을 집중시킴으로써 오히려 경쟁력이 강화된 사례도 흔히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시너지냐 아니냐라는 논쟁보다는, 성공·실패 사례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시너지 경영의 성공조건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너지 창출에 성공한 GE

 

GE는 주력 제품이었던 발전설비·의료기기·항공기엔진 등 고가 제품의 단순 판매에 그치지 않고, 금융 서비스 등을 결부시켜 상품의 고도화·복합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잭 웰치(Jack Welch) 전 회장은 재임 기간 중 시너지를 통해 영업이익률을 4배 이상 끌어 올렸다.

 

GE의 사례를 통해 시너지 경영의 성공 요건을 도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GE는 시너지 창출에 앞서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대대적인 사업구조개혁을 단행했다. 즉 각 핵심 사업의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먼저 전개한 후 본격적으로 시너지를 추구한 것이다. 둘째, GE는 시너지 경영의 주요 인프라로서 자회사 간의 공식·비공식적인 정보 공유 채널을 구축하고, 지주회사 체제하에서 공통의 경영이념과 비전, 조직 문화를 확립했다. 이 과정에서 크로톤빌 연수원을 단순한 교육의 장이 아니라 네트워킹과 정보, 사업 기회 공유의 장으로 적극 활용했다.

 

■사업다각화가 독(毒)이 된 비방디

 

프랑스의 대표적 기업집단인 비방디 유니버설(Vivendi Universal)은 시너지 경영 실패의 전형적 사례다. 비방디 유니버설은 원래 수도·폐기물 처리 등 유틸리티 산업에서 세계적 기업이었다. 하지만 1998년 이후 비방디그룹은 ‘디지털 컨버전스 구현을 선도하는 기업’을 새로운 전사적 비전(vision)으로 정하고, 유니버설 스튜디오(Universal Studio) 등의 인수합병을 통해 미디어·콘텐츠산업에 진입한다. 미디어·통신을 새 주력 사업으로 삼고, 방송·통신서비스·영화·음악·출판·인터넷 포털 등 관련 사업 간의 적극적 시너지 창출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비방디의 실험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고, 기업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정도에 몰렸다.

 

비방디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신규 진입한 분야에서의 경험과 역량 부족이 주요 실패 요인이다. 특히, 비방디의 기존 주력 사업과 미디어 산업 간에는 연관성이 부족했다. 경영 시스템이나 노하우 등 핵심역량을 새로운 사업에 이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너지 창출도 어려웠던 것이다. 둘째, 같은 미디어산업 내에서도 방송 같은 유통 채널과 음악 같은 콘텐츠를 수직적 계열화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고객들은 누가 만들었든 관계없이 양질의 콘텐츠가 다양하게 제공되기를 원할 뿐이기 때문이다.

 

■시너지 경영의 성공 요건

 

성공과 실패사례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시너지 경영의 성공 요건을 찾아낼 수 있다. 첫째, 비방디의 사례에서 보듯 기업집단에서 무조건 시너지가 창출된다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시너지는 생각만큼 창출하기가 쉽지 않고, 다각화된 사업 구조가 부(-)의 시너지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기업집단이 시너지 경영을 추구할 때는 치밀한 계획을 수립하여 성공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둘째, GE의 사례에서 보듯 자회사의 경쟁적 지위와 핵심 역량을 높이는 것이 시너지 창출의 선결 과제다. 강한 자회사 간의 결합만이 고객이 원하는 최고의 상품과 서비스로 이어질 수 있다. 강한 자회사가 일방적으로 약한 자회사를 지원하는 형태로 시너지 창출을 도모하면 오히려 강한 자회사의 경쟁력과 이미지를 훼손시켜 부의 시너지가 창출될 확률이 높아진다.

 

셋째, 자회사들이 자발적으로 시너지 창출 기회를 발견하여 스스로 협력할 때 시너지가 창출될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그룹 본사나 지주회사가 시너지를 창출하라고 강제하기보다는, GE처럼 자회사 상호 간의 공식·비공식적인 정보 공유, 인적 교류 및 네트워킹, 공동 사업 기회 모색의 장 등을 다양하게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먼저 기업집단 차원에서 공통의 경영이념과 기업문화, 브랜드 등을 구축해야 한다. 연수원을 시너지 경영의 장으로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업집단이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일단 시너지를 창출하면 전업형 기업에 앞설 수 있는 경쟁우위의 원천이 된다. 따라서 지주회사는 기본적으로 자회사의 경영 자율성을 인정해주고 통제는 최소화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기업집단 전체적으로 공통의 이익이 될 수 있는 분야에서는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주회사 차원에서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꼭 필요하고 여러 자회사를 아우르는 사업 기회가 있을 경우, 각 자회사를 설득하면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특히 최근 인터넷·통신·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제품·서비스·비즈니스의 융·복합화(convergence)가 강화되는 추세는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집단이 주류인 한국 기업들에 시너지 창출의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지주회사의 통제하에 공통의 기업문화와 이념 등을 공유하고 있는 한국의 기업집단이 자회사 간의 이해관계 조정과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원활히 할 경우, 외국의 전업형 기업보다 많은 융·복합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잘 실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조선일보 2007.11.24 / C3 면 • [기고자]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