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Achaia)
; 고대 그리스 마게도냐 남단의 지명으로 수도는 고린도.고린도 교회가 있었다.
바울이 2, 3차 전도여행 때 방문했던 로마의 한 속령으로 고대 그리스 마게도냐
남단을 일컫는다(롬 15:26; 살전 1:7). 원래는 펠로폰네소스 북쪽의 비옥한 지역을
말했으나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마게도냐를 포함한 넓은 지역을 아가야라고
불렀다. BC 27년에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아가야를 분할하여 다시 북쪽을
마게도냐로, 남쪽을 아가야로 명칭했다. 바울 당시 아가야 총독은 갈리오,
수도는 고린도였다(행 18:12; 고후 1:1).
마게도냐(Macedonia)
; 바울이 선교했던 유럽의 첫 지역.
발칸 반도의 그리스 북쪽에 위치했던 왕국이다.
마게도냐는 BC 7세기경 페르디카스 1세가 세웠으며, BC 4세기 알렉산더 대왕
때 전성기를 맞아 그 세력이 인도에까지 미쳤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 이후에는
분열하였고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성경에서 마게도냐는 바울이 선교했던 유럽의 첫 지역이었다. 바울은 마게도냐의
네압볼리, 빌립보, 암비볼리,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가 등을 방문했다(행 16:12;
17:1; 고전 16:5; 고후 7:5; 빌 4:15; 살전 4:10; 딤전 1:3). 마게도냐의 성도들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를 위해 헌금했고 바울이 마게도냐를 떠나 아가야로 갈 때
바울을 유일하게 후원하였다(롬 15:26; 고후 8:1-5; 빌 4:15).
고린도(Corinth)
; 아가야의 수도로 고린도 교회가 있었다.
그리스의 항구 도시로 상업과 무역이 번창한 상업도시이자 동서문화와 종교의
혼잡을 이루었던 도시이다. BC 8세기경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닌 도시였으나
BC 146년에 로마의 뭄미우스 장군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BC 46년 율리우스
시이저에 의해 재건되어 로마인들이 이주하여 살았다.
그 후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아가야 지방의 수도가 되었으며(BC 27) 상업,
무역, 정치의 중심지로 번창하였다.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극장이 있었고
여기서 운동경기가 수시로 열렸다. 고린도에는 적어도 12개의 신전이 있었는데
도시 중앙에는 아폴로 신전이 있었고 북쪽에는 치료의 신인 아스클레피우스
신전이 있었다. 또 고린도에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바쳐진 신전이
유명했다. 이곳에는 1,000명 정도의 신전 매춘부들이 있어 도시 전체를 도덕적으로
타락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고린도인이 되다’라는 헬라어 ‘코린티아조마이’(Korinthiazomai)가 ‘성적으로
부도덕하게 되다’라는 의미를 가질 정도였다. 이러한 도시의 타락은 고린도 교회
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전 5:1).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때 이곳에 들러
1년 반 동안 머물면서 전도하여 고린도 교회를 세웠다(행 18:1-11). 바울은
이곳에서 로마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썼다.
바울 이후 교회 역사에서 고린도는 중요성을 잃어갔으며, 1458년 사라센에게
점령되었고 1858년 대지진으로 폐허의 도시가 되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
1. 당파 문제(고전 1:10-4장)
2. 불륜 문제(고전 5장)
3. 소송 문제(고전 6:1-11)
4. 혼인 문제(고전 7장)
5. 우상의 제물 문제(고전 8-10장)
6. 부인의 수건 문제(고전 11:1-16)
7. 성찬에 관한 문제(고전 11:17-34)
8. 은사에 관한 문제(고전12-14장)
9. 부활 문제(고전 15장)
10. 헌금 문제(고전 16:1-4)
고린도 교회내의 아볼로파
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각각 바울, 아볼로, 게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인한 분쟁이 있었다(고전 1:11-12).
먼저 바울파는 고린도 교회의 설립자였던 바울의 지도를 믿고 존경하던 이들로,
바울의 사도권을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 바울을 변호하면서 당파적인 성격을
형성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볼로파는 유대인 헬레니즘의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에서 탄생하였고 성경에
능통하며 웅변에도 능했던(행 18:24-19:2) 아볼로를 따랐다. 아볼로는 지적인
해박성과 함께 아굴라 부부로부터 배운 복음의 진리로 인해서(행 8:26) 더욱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게바파와 그리스도파는 다소 성격을 규명하기 어려운데, 게바파는 베드로로
부터 지도를 받은 유대인 신자들이 형성했고, 그리스도파는 그리스도께 직접
속했다고 주장하는 신자들이 형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고린도 교회 내의
당파들에 대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온전히 합하여 하나될 것을
권면하였다(고전 1:10).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
저자, 기록 장소, 기록 시기: AD 55년경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중
에베소에서 3년 간 체류할 당시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기록의 배경과 기록 목적: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시 고린도에
1년 반을 머물면서 세운 교회였다(행 18:1-8).
바울은 아덴(아테네)에서 고린도로 처음 왔을 때 두렵고 떨렸다고 했다(고전 2:3).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장막업자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 함께
전도하게 되었고(행 18:1-3), 마게도냐로 파견했던 실라와 디모데도 돌아와
고린도에서 전도하였다(행 18:5). 그런데 이때 유대인의 적극적인 반대에 부딪혀
유대인 전도를 중단하고 디도 유스도라는 이방인 집을 중심으로 1년 반 동안
이방인에게 전도하여 고린도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행 18:7-11). 따라서 이런
배경에서 세워진 고린도 교회는 자연 이방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고린도의 역사, 문화적인 배경을 갖고 교회에 들어온 이방인 교인들은 여러
문제들을 일으키게 되었으며, 이러한 문제들은 바울에게 근심거리가 되었다.
이 때문에 바울은 여러 차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써 보내게 되었다. 이미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쓰기 전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으나(고전 5:9)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편지를 잘못 이해하여
문제를 일으켰다. 그래서 바울은 이에 대한 오해를 풀고(고전 5:9-13), 글로에의
집 사람들을 통해 듣게 된 고린도 교회의 분쟁 문제(고전 1:11-12)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리고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에 의해 전달된 고린도 교인들의 몇 가지
질문에 답하고자(고전 16:17) 고린도전서를 쓰게 되었다.
고린도전서의 특징:
1. 실제적인 문제에 답하여 기록한 실제적인 편지이다.
로마서, 갈라디아서처럼 교리적이거나 빌립보서, 빌레몬서처럼 개인적인 이유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처럼 목회 차원에서 쓴 글이 아니었다. 물론 이런 성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내용을 다룬 서신이다.
2. 고린도 교회에 일어난 문제들은 모든 세대의 교회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모든
세대의 교회에 교훈과 적용을 가능하게 하는 실제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
3. 초대교회의 상황과 형태를 알게 하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가 된다.
4. 문학적인 탁월함을 보여 준다. 특히 사랑의 장으로 알려진 13장, 부활장으로
알려진 15장은 뛰어난 문체와 논리적인 전개를 잘 보여 준다.
고린도후서(2 Corinthians)
;마게도냐에서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
저자, 기록 장소와 시기: 고린도전서를 쓴 AD 55년 가을(AD 56년경으로
보기도함)에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기록의 배경과 기록 목적: 바울은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를 쓰고 나서 디도를
고린도 교회로 보내 그곳의 상태를 알아보게 하였다. 그런데 디도가 더디 올
뿐 아니라 에베소에 소동이 일어나서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행 19:23-20:1)
드로아를 거쳐 마게도냐로 갔다(고후 2:12-13). 그 후 디도가 마게도냐에 와서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전해 주었는데(고후 7:5-7)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 회개하였다는 것과 바울을 간절히 사모한다는 기쁜 소식이었다(고후 7:7).
그러나 거짓 교사들이 거짓 교리를 퍼뜨리면서 바울의 사도직과 가르침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고후 11:13-15). 그래서 바울은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고 자신의 사도권과 전파한 복음의 정당성을 변증하기 위해
고린도후서를 써 보냈다(고후 4-6장; 10-13장). 그리고 또한 예루살렘 교회의
구제를 위한 연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후 8-9장).
고린도후서의 특징: 바울의 자서전적 서신으로 바울 개인의 경험과 견해가
많이 들어 있다. 고린도전서에 비해 감정적인 면이 강하다. 바울의 인간적인
모습과 복음을 위한 그의 고난의 생애가 잘 나타나 있다. 이 서신은 바울의
초기 저작에 속하는 것으로 초대교회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출처] 비전성경사전
사도 바울
바울(Paul)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공헌을 한 신약 시대의
인물이다. “대머리와 휜 다리에 눈썹은 서로 맞닿고 코는 매부리에 단신의 다부진 체구를
가진 호감에 찬 사나이, 그는 인간의 모습에 천사의 얼굴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2세기 ‘
바울과 테크라의 행적’(The Acts of Paul and Thecla)이라는 한 외경에 묘사된 바울의
인물 스케치이다.
한때는 기독교의 핍박자였던 그가 다메섹에서의 회심을 통해 신약성경의 방대한 부분을
기록한 성경의 저자요 위대한 신학자로, 노련한 목회자요 설교자로, 또 유대인 공동체의
울타리를 넘어 이방 세계로 나아간 선교사가 된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다. 바울에
대한 이해는 그가 활동했던 AD 1세기 유대- 헬라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비전성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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