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교회영성묵상

침묵 기도 영성 운동

공격이 2007. 12. 5. 09:20

침묵 기도 영성 운동

 

지난 11월 8일,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를 위시하여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박은조 목사(분당 샘물교회) 등 10여 명은 분당 지구촌교회에 모여 "레노바레 코리아"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레노바레" 운동을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 "레노바레"(renovare)라는 말 자체는 "새롭게 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레노보"(renovo)에서 파생된 말로서, "새롭게 함," "갱신," "쇄신," "회복," "부흥"이라는 호감이 가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 "레노바레" 운동이라는 것의 실체는 "침묵 기도 위주의 영성 운동"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그것은 16년 전에 미국의 리처드 포스터(Richard Foster) 목사가 시작한 영성 운동이다. 그의 저서들은 생명의 말씀사 및 두란노 등의 출판사에 의해 국내에도 번역, 소개되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다음은 그 영성 운동에 대한 소개말 중 하나다. "레노바레는 침묵 속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면서 스스로 변화되고, 이를 통해 교회와 이웃을 새롭게 하는 운동이다. 원하는 것을 큰 소리로 외치는 기존의 통성 기도와 달리 침묵 기도는 고요함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내면 여행'을 강조한다. 카톨릭의 관상기도와 유사한 것으로도 설명된다." 카톨릭의 관상기도라면, 그것은 "반"(反)종교개혁의 주역이자 로마 교황의 직할 부대 역할을 했던 예수회라는 단체를 창시한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성 수련법과 같은 부류의 수련이다. 레노바레 영성 운동은 다분히 카톨릭적이며, 이교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리처드 포스터 목사의 "레노바레" 운동을 비평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리곤 했다. "포스터(Foster)는 정적주의, 만트라, 불교, 요가, 초월명상,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성 수련법, 동양 종교 등과 같은 뉴에이지의 온갖 수련법들을 가르친다..." "레노바레 영성 훈련의 많은 부분은 '기독교' 명상의 전통과 관련해서 선정된 영성 수련 대가들의 기록에 나와 있는 명상과 연루되어 있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로마 카톨릭이고, 특히 4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신비주의자들이다." "포스터는 동양의 명상법을 사용하여 영적인 여행을 하는 그의 추종자들을 하늘 너머 '하나님의 면전'으로 데려가서 우주의 창조자와 대면하게 한다."

 

아직은 "레노바레" 운동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성경적인 상식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운동은 성경이 제시 하는 바 "경건"의 훈련과는 다른 곳을 향해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레노바레 운동이 시작되는 모습을 살펴보아도 그 운동이 성경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단적인 예로, 레노바레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가려고 설립된 단체인 "레노바레 코리아"의 디렉터 강찬기 목사는, 그동안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영성 운동을 펴온 최일도 다일교회 목사 등도 레노바레 코리아와 협력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최일도 목사는 일찍이 "매달 4박 5일씩 영성수련원에 들어가서 침묵 수행과 기도만 한다."고 하면서 "앞으로 법정 스님처럼 수도를 하면서 살고 싶다."고 밝혔던 목사다. 그는 성경적 기독교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며, 성경의 진리를 버리고 타 종교와 연합하면서 거짓 교리들을 퍼뜨리고 있는 목사다. 그런 사람이 협력하기로 했다는 사실은, 레노바레 운동의 "영성" 역시 하나님의 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더욱 뒷받침해준다.

 

그리스도인들은 최근에 결성된 단체인 "레노바레 코리아"의 활동을 경계하여, 우리나라 개신교계 전체에 비성경적 영성 운동이 확산되어 가는 것을 막아야 하며, 결코 동참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그들이 본격적으로 펼치려 하는 "레노바레" 운동에 대해 제대로 경계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운동과 유사하다고 알려져 있고 동일하게 침묵 속에서 "내면 여행"을 하는 카톨릭의 "관상기도"에 대해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카톨릭의 관상기도에 대해 성경적인 관점을 갖추고 있다면, 레노바레 운동에 의해 교회들 속에 영적인 해악이 퍼져가는 부분에 대해서 경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목적에서 여기서 잠깐 침묵 기도를 한다는 카톨릭의 "관상기도"(觀相祈禱)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다.

 

 

다음은 "관상기도"에 대한 설명이다. "완전 관상 - 일체의 상상이나 이미지가 멈춘 순수한 어두움의 상태에서 하나님과 일치 경험을 하는 것이다. 관상 경험에 이르기 위해서는 일체의 상상력이나 이미지를 끊임없이 제거하여 감각의 어두움과 영의 어두움에 이르러야 한다. 결국 인간의 모든 개념이나 언어는 잠을 자게 되고 깊은 침묵의 심연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상태가 순전한 영의 세계로서 하나님과 일치의 경험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이 관상 기도법은 갈멜 수도회의 전통이다. 불완전 관상 - 상상력이나 갖가지 이미지가 관상적인 체험에 이르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는 것이다. 가장 하찮은 피조물로부터 가장 고상한 하나님의 속성을 단계적으로 관상해가면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추구하는 영적 여정의 패턴을 말한다. 이 관상 기도법은 예수회의 전통이다. 내면의 모든 사고와 의지와 계획까지도 단절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완전히 자신을 비워 자신의 생각, 상상, 영상, 중보 기도나 어떤 기도제목도 버림으로 세상과 단절해야 한다. 관상 기도는 내, 외부적인 모든 방해물과 단절하거나 분리시킨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한 '기다림'이다."

 

 

인간의 상상력을 매개체로 해서 영의 세계로 빠져드는 수련 방법이 있고, 또 인간 정신의 모든 기능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영의 세계로 빠져드는 수련 방법이 있는 것이다. 어느 방법이든 성경적으로 잘못된 방법들이다. 인간의 상상은 어려서부터 악하며(창 8:21) 계속해서 악하다(창 6:5).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인간의 상상력을 매개체로 영의 세계로 빠져든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또한 인간 정신의 모든 기능을 제거하여 영의 세계에 접근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마귀의 영이 들어갈 좋은 환경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야말로 완전히 "비어 있고, 소제되고, 단장된" 집과 같은 상태다(마 12:44). 더러운 영이 들어가서 살기에 딱 좋은 상태를 자기 속에 마련한 것이다(마 12:45). 영의 세계로 빠져들기 위하여 비성경적인 수련을 하는 것은 마귀의 영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무모한 행동이다. 영의 세계에는 하나님의 영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영들도 허다하다. 실제로 각종 이교도들이 유사한 형태의 "기도"를 하면서 각기 자기들의 종교적 체험들을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영성 수련은 하나님의 영을 만나는 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레노바레 코리아와 협력하기로 한 영성 수련자인 최일도 목사는 일전에 어느 신부와 중과 함께 이야기하며 기도와 참선, 묵상이 자신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가장 큰 힘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하여 그런 수련법을 시행하라고 전혀 말씀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카톨릭의 관상기도는 성경에 제시되어 있는 기도, 곧 구하는 것들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알려지게 하는 것(빌 4:6)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관상기도는 실제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신을 혼미케 하여 영의 세계에 접근해보려는 불순한 작업일 뿐이다. 성경에서는 그렇게 기도하라고 제시한 적이 없다. 성경에서 제시하는 기도는 "침묵" 수행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들으신다"(시 54:2; 66:19; 86:6; 88:2). 다윗의 기도(삼하 7장), 솔로몬의 기도(왕상 8장), 다니엘의 기도(단 9장), 예수님의 기도(요 17장) 등을 비롯하여 성경에 나오는 온갖 기도의 예들도 전부 아버지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이다. 때로는 겉으로 소리 나지 않게 기도하기도 하지만(삼상 1:13, 느 2:4), 그것도 분명히 마음속으로 어떤 내용을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다(삼상 1:13). 그리스도인이 해야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필요를 구하는 것이다(요 14:13,14; 15:16; 16:23,24). 성경에서 추천하는 기도의 태도 역시 침묵 수행의 관상기도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성경에서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고 하시며(벧전 4:7), 열렬히 기도하고(골 4:12), 믿음으로 끈질기게 기도할 것을(눅 18:1-8) 말씀하신다. 그 어느 것도 침묵 수행이나 관상기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자신의 정신세계에서 의지와 기도제목마저 버리는 관상기도는 성경에서 말씀 하는 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결코 될 수 없으며, 마귀의 영을 불러들이는 의식밖에는 될 수 없을 것이다.

 

레노바레 운동의 주축에 서 있는 지구촌교회의 이동원 목사는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지구촌교회는 5년 전부터 침묵 기도를 꾸준히 해왔다."고 하면서 "이번 레노바레 코리아의 발족을 계기로 우리나라 개신교계 전체에 이 같은 침묵 기도와 영성 운동이 널리 확산돼 개신교인들의 신앙이 더욱 깊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구촌교회의 목사처럼 유명한 사람이 퍼뜨리는 운동이라고 해서 괜찮겠거니 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생명의 말씀사나 두란노 등 유명 출판사를 통해 교계에서 스테디셀러가 된 저작들을 지은 목사가 시작했던 운동이라고 해서 좋은 운동일 거라고 생각하고 무분별하게 교계에 퍼뜨려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을 시험하여 보고 선한 것을 붙잡으라. 악은 어떤 형태이든지 피하라』(살전 5:21,22). "레노바레" 운동의 위험성을 직시해야 한다. 지구촌교회의 목사는 그 운동이 확산됨으로써 "개신교인들의 신앙이 더욱 깊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는데, 한국에 상륙한 "레노바레" 운동 역시 카톨릭의 관상기도와 같은 침묵 수행의 영성 수련을 하도록 가르친다면, 그것은 결국 개신교인들의 신앙이 깊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신교인들의 신앙을 카톨릭화, 이교도화 시키고 마귀에게 내어주는 일이 될 것이다

 

출처: http://blog.naver.com/cjseong123/60042411251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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