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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전 읽으면 논술이 술술 <1-1>

공격이 2007. 12. 3. 10:48

1.고전 읽으면 논술이 술술 <1-1>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11/21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 중앙에 위치한 두 사람이 플라톤(왼쪽)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이상주의자인 플라톤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키고 있는 반면 현실주의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이 땅을 향하고 있다.

수능이 끝났다. 2008학년도부터 수능과 내신성적이 등급으로 적용되면서 논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대학마다 학생 선발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력을 요구하는 논술 지문을 출제하고 있어 참고서에 나오는 모범답안에 의존할 경우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이에 따라 국제신문은 부산가톨릭대 인문학연구소와 공동으로 고전 강좌를 마련했다. 동서양의 고전을 읽으며 논술고사에 나올 만한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고민하면서 해답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고전 속에 논술의 해법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고전 강좌는 고3 뿐만 아니라 고교 1, 2학년 학생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핵심 용어

 

▶행위와 삶 = 행위는 통상 우리가 일정한 의도와 태도를 가지고 수행하는 행동을 지시하는 낱말이다. 따라서 행위 하나하나는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최소의 단위이며, 삶은 우리의 행위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전체이다.

 

▶도덕과 윤리 = 도덕과 윤리는 흔히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는 용어이지만 엄격하게 구분하면 도덕은 개인적 차원에서, 윤리는 사회적 차원에서 고려되는 우리들 인간의 행위와 삶에 대한 이치 또는 원리라고 정의할 수 있다.

 

▶행복 = 행복이란 금전이나 명예 그리고 쾌락 등 어느 한 가지 또는 몇 가지 욕망이나 욕구의 충족으로 달성되는 구체적인 만족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의 품성이 복잡다단한 만큼 이런 요소들이 모두 가장 적절한 상태로 조화를 이룸으로써 형성되는 '좋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행복의 상태에 이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인 셈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삶의 목적성을 표현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선과 최고선 = 선이란 '좋음' 또는 '좋은 상태'를 뜻하는 말이며, 따라서 최고선이란 '가장 좋음' 내지 '가장 좋은 상태'로서 모든 것이 가장 잘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상태를 지시하는 용어이다.

 

 

◆ 주요의제

 

①'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어떤 책인가

 

② 인간적 행위와 삶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다.

 

③ 행복이란 삶의 가장 좋은 상태, 즉 최고선이다.

 

1. 아리스토텔레스와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함께 서구 정신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과학자이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학문이라고 부르는 대다수 이론적 탐구의 분야를 개척했으며, 윤리학도 역시 그 중의 하나이다. 윤리학은 철학의 주요 분야로서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흔히 등장하는 낱말이지만, 이 낱말을 처음 쓴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게다가 윤리학이라는 낱말이 가리키는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도 일반적으로 그다지 정확하지 않은 형편이다.

 

윤리학이 다루는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행위와 삶의 이치이다. 우리의 행위 하나 하나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며, 우리의 삶은 행위 하나 하나를 모두 망라한 전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좋은 삶을 추구한다. 따라서 좋은 삶은 연속된 좋은 행위의 전체인 셈이다. 개인의 좋은 행위 및 좋은 삶을 문제 삼을 때 우리는 거기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이치를 찾으려 하고, 이런 개인적 차원의 보편적 원리를 도덕이라고 부른다. 한편 우리는 개인으로서만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함께 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개인의 행위와 삶은 다른 사람들의 행위와 삶에 영향을 미치고, 다른 사람들의 행위와 삶은 개인의 그것에 또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런 사회적 관계 차원에서 좋은 행위와 좋은 삶이 문제될 때, 우리는 그것의 이치와 원리를 윤리라고 부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인적 차원 및 사회적 맥락에서 좋은 행위와 좋은 삶의 보편적 이치 내지 원리를 체계적으로 탐색한 최초의 철학자이고, 그 결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필독의 고전으로 전해지고 있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다. 따라서 좋은 삶과 좋은 행위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해명이 바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담겨 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근본 주제는 인간적 행위의 궁극적 목적과 그에 이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2.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주제와 구성

 

좋은 삶이라고 부를 만한 삶이라면, 그것은 좋은 행위들로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말이야 쉽지만, 좋은 삶이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런 어려움은 행위 및 삶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자가 대단히 복잡다단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두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 누구나가 추구하는 삶의 좋음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려고 한다. 그는 우리가 살면서 누구나 추구할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삶의 목적이라고 규정하고, 이 목적을 따로 행복이라고 부른다. 이 점에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행복론이기도 하다. 행복은 그것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돈이 많다고 하여 행복한 것이 아니며, 높은 명예나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다. 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여도, 그것이 곧 행복인 것은 아니다. 다만 행복에는 이런 요소들도 적절하게 요구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으며, 보다 폭넓게 말하면 인간의 욕구 및 욕망 전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난점을 고려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 행복에 대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인 규정 아래 행복에 요구되는 조건들을 하나씩 각론적으로 다루어간다.

 

행복에 요구되는 조건들을 그는 덕이라 부른다. 그리고 인간의 행복은 어느 한 사람의 행복으로만 달성되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에서 빚어지는 문제를 고려하여 행복의 사회적 조건을 모색한다. 끝으로 행복이라는 개념과 흔히 혼동을 일으키는 쾌락(즐거움)의 문제를 대비하여 쾌락이 행복의 한 구성요소에 들기는 하지만, 그것이 곧 행복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결론적으로 확정짓는다. 이렇게 크게 나누어 볼 때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모두 네 가지의 문제를 각론으로 다룬다. 그것은 ⓛ행복은 무엇인가 ②행복의 조건으로서 개인의 덕은 무엇인가 ③행복의 조건으로서 사회적 덕은 무엇인가 ④왜 쾌락은 행복이 아닌가라는 네 가지의 소주제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④의 문제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앞부분에서 이미 수긍할 수 있을 만큼의 답을 마련해두고 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인간적 행위의 궁극적 목적과 그에 이르는 방법을 논의하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행복론, 덕론, 정의론이라는 세 가지의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정의가 사회적 덕으로서 행복의 조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인간적 삶의 궁극적 목적인 행복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고 논의하는 총론적 또는 원리론적 성격의 행복론과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요구되는 조건들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방법론에 해당하는 덕론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3. 행복은 무엇인가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삶을 바라고 좋은 삶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좋은 삶이란 누구나가 살면서 지향하는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누구나에게 해당되는 이런 목적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이런 목적은 삶의 가장 좋은 상태 또는 가장 좋은 상태의 삶이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것, 즉 삶의 가장 좋은 상태를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이란 인간의 행위가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가장 좋은 어떤 것 또는 가장 좋은 어떤 상태'이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음 또는 좋은 상태를 '선(善)'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여기서 선이란 착한 성질 또는 착한 인성 같은 것이 아니라, 좋음 또는 좋음의 상태를 일컫는 낱말이다. 가장 좋음 또는 가장 좋은 어떤 상태는 이제 가장 두드러진 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선이란 선 가운데 가장 높은 지경의 선이란 뜻에서 최고선 또는 최상선이란 말과 같은 뜻의 말이다. 행복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논의를 따르면 이제 삶의 궁극 목적은 곧 행복이요, 행복은 곧 최고선으로서 우리가 살면서 추구할만한 것들 가운데 가장 의미 있고, 가장 가치 있는 어떤 것이다. 그래서 행복은 그 자체로서 행위와 삶의 목적이 되기 때문에 다른 한편 우리가 수행하는 행위의 원리로 작동하는 셈이다. 이상은 이제 삶의 궁극목적=행복=최고선=행위의 원리라는 등식 관계로 정리할 수 있다. 그 구조에 따라 분석해 본 이상의 논증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을 통해서 직접 들어보자.

 

"모든 경우들에 있어서 총기획적인 것의 목적이 그것 아래에 놓이는 다른 모든 목적들보다 더 선택할만한 것이다. 전자를 위해 후자가 추구되는 것이니까. … 그래서 만약 '행위될 수 있는 것들(pakton)'의 목적에 있어서, 우리가 이것은 그 자체 때문에 바라고, 다른 것들은 이것 때문에 바라는 것이라면, 또 우리가 모든 것을 다른 것 때문에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이 좋음이며 최상의 좋음(ariston, 최고선)일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니코마코스 윤리학, 1094a)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인간적 행위의 궁극 목적이란 말을 전혀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강제되고 강요된 행위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자의적인 행위를 수행하는 경우라면 일반적으로 그 행위에 어떤 의도를 담는다. 이는 곧 그 행위를 통해서 꾀하고 달성하려는 어떤 것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을 우리는 목적이라고 이해한다. 인간이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 무언가를 꾀하고 달성하려는 이런 성질을 지향성(Intention)이라 부른다. 지향성이란 무언가를 지시하고 그것을 향하는 방향성이 있음을 가리키는 성질이다. 따라서 행위를 통해 의도하고 꾀하는 그 방향의 끝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그 행위의 목적이다.

 

어떤 특정한 행위의 목적은 그 행위를 통해서 의도하는 특정한 내용에 따라서 각 경우마다 다르다. 우리는 행위를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그 자신에게 나쁜 것을 목적하지는 않는다. 달리 말해서 일반적으로 우리는 각자 어떤 행위를 하건간에 그 행위를 통해서 어떤 좋은 것 또는 좋은 상태를 구하려고 애쓴다. 따라서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행위를 통해서 구할 수 있는 최상의 좋은 것 또는 최상의 좋은 상태이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최상의 좋은 상태 또는 최상의 좋은 것은 그것이 그 자체로 좋은 것이기 때문에 다만 그 자체로서 추구되어야 할 행위의 목적이 되는 것이고, 행위의 목적인 최상의 좋은 상태란 곧 인간이 행위라는 수단적 경로를 통해서 지향하고 추구하는 궁극 목적이라는 점에서 인간적 행위의 추동원리로서 이해되는 것이다. 이러한 최상의 좋은 것, 최상의 좋은 상태를 아리스토텔레스는 eudaimonia(행복)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으로 번역하는 eudaimonia라는 고대 그리스의 용어는 어원적으로 잘(well)을 의미하는 eu와 영적이고 신적인 존재 daimon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어원에 따르자면 '신적인 것이 잘 뒷받침 해주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행복이란 개념의 어원적 의미에는 신적(神的) 영향력의 개입이 수용되고 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삶의 궁극목적이 한편으로 인간의 노력에 달린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인간의 노력과는 무관한 요소들의 개입에 따라 그 형편이 달라질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사실이다. 예컨대 뜻밖의 불운이나 천재지변 같은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어찌해 볼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제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행복의 조건들에 관하여 논의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를만한 삶의 상태에는 많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 인간의 품성에서 찾는다. 그 중에서도 특히 문제되는 것은 인간에게만 고유한 품성이다. 우리가 지닌 모든 품성들이 각각 좋은 상태로 발현되고,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상태의 삶은 가장 좋은 상태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조건들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제 덕이라고 지칭하고, 덕에 관하여 하나씩 살펴나간다. 이 부분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이 무엇인지를 정의한 뒤에 이어지는 덕론에 해당된다. 행복이란 개념과 마찬가지로 덕도 역시 '좋음'이라는 상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논의하기로 하자.

 

◆ 생각해볼 문제

① 도덕과 윤리의 차이는 무엇인가?

② 인간의 삶에는 궁극적 목적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있는가?

③ 행복이 최고선이라는 아리스텔레스의 정의는 논리적 설득력을 갖고 있는가?

 

출처:국제신문, 11월21일, 32면.

1.고전 읽으면 논술이 술술 <1-1>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11/21

 전봉주(독일 훔볼트대 철학 박사과정 수료 부산가톨릭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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